존 C. 칼훈 (1814)

존 C. 칼훈 (1814)

존 콜드웰 칼훈(1782년-1850년)은 1825년부터 1832년까지 미국의 제7대 부통령을 지낸 미국의 정치인이자 정치 이론가이다. 그는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노예제 찬성파의 지도자였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널리 간주된다.

얼리 라이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애브빌에서 패트릭 캘훈과 마사 콜드웰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804년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코네티컷주 리치필드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돌아온 후, 그는 1807년 변호사 자격을 얻었고 에이브빌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정치 경력

1808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어 1810년까지 재직했다. 1811년 그는 미국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어 1817년까지 재직했다. 그 후 그는 미국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어 1825년까지 재직했다. 1825년 그는 미국의 부통령으로 선출되어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과 앤드루 잭슨 대통령 밑에서 일했다.

이데올로기

칼훈은 국가의 권리에 대한 확고한 옹호자였으며 노예제도의 목소리를 높이는 옹호자였다. 그는 주들이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연방법을 무효화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는 연방 정부의 권력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했다. 그는 또한 노예제가 노예와 노예 소유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선"이라고 믿었다.

레거시

칼훈의 유산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되지만, 노예제도와 국가의 권리에 대한 그의 견해는 널리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또한 연방 정부와 주 간의 힘의 균형을 주장한 "동시 다수당"을 옹호한 것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