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 S. 그랜트 (1822)

율리시스 S. 그랜트 (1822)

율리시스 S. 그랜트()는 1869년부터 1877년까지 미국의 18대 대통령을 지낸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1822년 4월 27일 오하이오주 포인트 플레전트에서 태어나 1885년 7월 23일 뉴욕주 마운트 맥그리거에서 사망했다. 그랜트는 미국 남북 전쟁 동안 북군의 지도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이는 남군의 패배와 북군의 보존으로 귀결되었다.

얼리 라이프

율리시스 S. 그랜트는 1822년 4월 27일 오하이오주 포인트 플레전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제시 루트 그랜트는 제혁업자이자 농부였다. 그의 어머니 한나 심슨 그랜트는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다. 그랜트는 세 명의 남동생이 있었다: 심슨, 클라라, 그리고 오빌. 그랜트의 아버지는 그가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다니기를 원했고, 그는 1839년 5월에 입학했다. 그를 임명하도록 추천한 의원이 자신의 이름을 율리시스 심슨 그랜트로 잘못 적었기 때문에, 그는 아카데미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율리시스 S. 그랜트로 바꾸었다.

남북 전쟁

그랜트는 멕시코-미국 전쟁 동안 특출나게 복무했고 대위로 승진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미국 서부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고, 그곳에서 그는 술을 많이 마시고 다루기 힘든 장교로 명성을 얻었다. 1861년, 남북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랜트는 북군에 복무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그는 준장으로 승진했고 1864년에 북군 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전쟁에서 북군을 승리로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북군의 보존과 노예제도의 종말을 가져왔다.

대통령직

전쟁이 끝난 후 그랜트는 1868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1869년부터 1877년까지 두 번의 임기를 지냈다.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경제를 개선하고, 정부의 부패를 줄이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시민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또한 대륙횡단철도의 완성과 미국의 서부 영토 확장을 감독했다. 관직을 떠난 후, 그랜트는 2년간의 세계 일주 여행에 착수했다.

죽음

1884년, 그랜트는 인후암 진단을 받고 몇 달 밖에 살지 못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회고록을 쓰는 데 말년을 보냈다. 1885년 7월 23일, 그랜트는 63세의 나이로 맥그리거 산에서 사망했다. 그는 뉴욕에 묻혔고, 그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추모객들이 참석했다. 그랜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그는 워싱턴 D.C.에 있는 동상을 수여받았으며, 그의 초상화는 50달러 지폐에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