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 S. 그랜트 (1822)
율리시스 S. 그랜트 (1822)
율리시스 S. 그랜트는 미국의 18대 대통령이자 남북 전쟁 동안 북군에서 두드러진 군사 지도자였다. 그는 1822년 4월 27일 오하이오주 포인트 플레전트에서 히람 율리시스 그랜트로 태어났다. 그랜트는 남북 전쟁 동안 북군의 지도력과 궁극적으로 남군의 항복과 전쟁의 종결로 이끈 그의 성공적인 군사 작전으로 가장 잘 기억된다.
얼리 라이프
그랜트는 제혁업자인 제시 루트 그랜트와 한나 심슨 그랜트의 아들이었다. 그는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다녔고, 1843년에 졸업하고 미국 제4보병사단에서 소위로 임관했다. 그랜트는 중서부에 주둔했고 멕시코-미국 전쟁 (1846년-1848년)에 참전했다. 그는 전투에서 용감했기 때문에 대위로 진급했고 나중에 태평양 북서부로 이동했다.
남북 전쟁
남북 전쟁의 시작에서 그랜트는 제21 일리노이 보병 연대의 대령으로 임명되었고, 서부 극장에서 자신의 군대를 일련의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1861년 8월 정규군에서 준장으로 진급했고 곧 테네시 주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862년 3월 그랜트는 소장으로 진급하여 테네시 군의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그의 군대를 승리로 이끌었고, 1863년 7월 미시시피주 빅스버그를 점령했다.
대통령직
1868년 그랜트는 미국의 18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자신의 두 임기 동안 그랜트는 국가의 경제를 회복하고 재건 시대를 끝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또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헌법 수정 제15조에 서명했다. 그랜트의 행정부는 위스키 불법 판매와 관련된 위스키 링 스캔들을 포함한 여러 스캔들로 손상되었다.
라이터 라이프
1877년 퇴임 후, 그랜트는 일본, 중국, 인도, 그리고 이집트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는 2년간의 세계 여행에 착수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랜트는 1885년에 사후에 출판된 회고록을 썼다. 그랜트는 1885년 7월 23일 뉴욕주 마운트 맥그리거에서 인후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뉴욕에 있는 그랜트 무덤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