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에 태어난 10명의 위대한 사람들: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 (1850)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 (1850)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Elizabeth Cady Stanton)은 미국의 사회운동가, 노예제 폐지론자, 초기 여성 인권 운동의 지도적 인물이다. 1850년 11월 12일 뉴욕주 존스타운에서 태어난 스탠튼은 저명한 노예제 폐지론자와 여성 권리 옹호자의 딸이었다. 그녀는 1848년 첫 여성 권리 대회에서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 기여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얼리 라이프

스탠튼은 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대니얼 캐디는 저명한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여성 인권 옹호자였으며, 그녀의 어머니 마거릿 리빙스턴 캐디는 여성 교육의 강력한 신봉자였다. 스탠튼은 존스타운 아카데미와 트로이 여자 신학교(현재의 엠마 윌러드 스쿨)에 다녔다. 신학교에서 그녀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다른 초기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접하게 되었고, 이는 그녀의 삶과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 참정권에 대한 기여

1848년 스탄턴은 친구이자 동료 여성 참정권론자인 루크레티아 모트와 함께 뉴욕 세네카폴스에서 열린 제1차 여성권리대회에 참석했다. 이 대회에서 스탠튼은 여성의 법적,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는 그녀의 유명한 "감정의 선언"을 발표했다. 이 연설은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시작으로 널리 여겨진다.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자신의 일에 더하여 스탠튼은 또한 1869년 전미 여성 참정권 협회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1890년까지 대통령직을 맡았고, 수잔 B가 뒤를 이었다. 앤서니.

라이터 라이프

그녀의 말년에 스탠튼은 계속해서 여성 권리 운동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성경을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한 여성성경(1918)을 포함한 수많은 책을 쓰고 출판했다. 그녀는 또한 1890년에 미국 여성 참정권 협회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1902년에 사망할 때까지 여성의 권리를 위한 옹호자였다.

스탠튼의 유산은 그녀가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준 많은 단체의 형태뿐만 아니라 그녀의 삶과 일에 영감을 받은 수많은 여성들의 형태로 살아있다. 그녀는 미국에서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