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아티에 전투
푸아티에 전투 (1356년)
푸아티에 전투(Battle of Poitier)는 1356년 9월 19일에 일어난 유럽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다. 이 전투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와 프랑스의 장 2세가 오늘날의 프랑스 서부에 위치한 푸아티에시 근처에서 벌인 전투이다. 에드워드의 아들 흑태자가 이끄는 영국군은 승리를 거두었고, 유럽의 힘의 균형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전투의 배경
두 나라 사이의 분쟁은 대대로 일어나고 있었다. 1337년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이 프랑스 왕위의 합법적인 계승자임을 선언하고 백년전쟁을 일으켰다. 잉글랜드군은 초기에 프랑스 북부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파리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1346년 크레시 전투에서 잉글랜드가 승리하면서 잉글랜드는 더욱 큰 성공을 거두었다. 1356년까지 에드워드는 프랑스 북부 해안의 대부분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전투 준비
장 2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1356년 8월부터 푸아티에 지역에서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9월 18일 밤, 잉글랜드군은 푸아티에 근처에 도착하여 도시 밖에 진을 쳤다. 다음 날, 영국군은 프랑스군을 기습 공격하여 프랑스군의 허를 찔렀다.
더 배틀
전투는 영국군의 맹렬한 기병대의 돌격으로 시작되었다. 기습을 당한 프랑스군은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맹공에 밀려 퇴각했다. 프랑스군은 잉글랜드 궁수들의 치명적인 화살 세례로 더욱 약화되었다. 그리고 나서 영국군은 보병으로 두 번째 공격을 시작했다. 프랑스 보병대는 그들의 진지를 지켰지만, 결국 영국군에 의해 압도당했다.
후폭풍
잉글랜드군은 푸아티에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프랑스군은 큰 손실을 입었다. 요한 2세 자신도 체포되어 몸값을 요구받았다. 푸아티에 전투에서의 잉글랜드의 승리는 백년전쟁의 전환점이 되었고, 유럽의 힘의 균형을 프랑스에서 영국의 지배로 바꾸었다. 영국군은 또한 파리를 포함한 북부 프랑스의 대부분을 장악할 수 있었다.
푸아티에 전투는 유럽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었고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100년 전쟁의 전환점을 표시했고 유럽의 힘의 균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전투는 또한 영국군의 힘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